
사람의 혈액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인체 수혈은 영국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블런델이 1818년 위암 환자에게 시행한 수혈로 알려져 있다[1]. 하지만 그 당시에는 적혈구의 ABO 혈액형이 알려져 있지 않았기에 수혈의 성공은 확률적인 우연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이후 1901년에 칼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ABO 혈액형이 발견되었다. 칼 란트슈타이너의 ABO 혈액형 발견 이후 과학적인 수혈이 가능하게 되었으나 국내에서의 초기 수혈 현황에 대한 조사 및 보고는 아직 없는 실정이다. 저자는 대한수혈학회 40년사를 준비하면서 국내 초기 수혈 현황에 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었기에, 국내에서 수혈이 언제,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본 조사를 시행하여, ABO 혈액형 발견 이후의 국내 초기 수혈 현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2011년에 한국의학원에서 발행한 근대 의학 학술지 CD를 이용하여 1920년에서 1930년까지 국내에서 발행된 조선의학회잡지, 조선의보 등의 의학 학술지의 목록을 조사하였다[2]. 혈액형과 수혈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하였고, 검색 결과 혈액형 및 수혈과 관련된 문헌은 그 내용을 검토하여 확인하였다. 조선의학회잡지는 조선의학회에서 1911년에 창간하였는데, 창간 이후 1920년까지는 수혈에 관한 문헌을 찾아 볼 수 없었다.
1922년 조선의학회잡지 제40호에 ‘일본, 조선인 사이에 있어서 혈액속별 백분율의 차이 및 혈액속별 특유성의 유전에 대하여’가 조선총독부의원의 백인제 등에 의해 보고되었다(Fig. 1). 이 문헌은 조선인 948명과 일본인 502명의 ABO 혈액형을 조사하여 Hirschfeld 분류법에 따른 A/B 생물화학계수를 구한 것으로 조선인은 1.1, 일본인은 1.78로 나타났다. 백인제는 ‘수혈혈구의 운명’(1923년), ‘동종혈구 응집반응에 의한 人혈액총량 측정법’(1924년), ‘혈액형 유전학설에 대한 사견’(1926년), ‘직접 수혈법에 대하여’(1927년)를 조선의학회잡지에 발표하였다. 직접수혈은 채혈자로부터 직접 주사기로 채혈하여 바로 환자에게 수혈하는 것으로 정교한 기술과 기구가 필요하다. 그 당시에 국내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직접수혈기가 현재 한독의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Fig. 2). 혈액에 항응고제를 첨가하여 바로 수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간접수혈로 분류하였다. 1924년 조선의학회잡지에는 박창훈의 ‘혈청 및 적혈구의 면역원성’ 강연초록 문헌도 있었다. 백인제는 경성의전에서 발행한 경성의전유린(京城醫專有鄰)에 ‘인혈 혈액형의 유전 및 그 유전 가설에 대한 비판’(1925년)과 ‘수혈에 대하여’(1930년) 문헌을 발표하였다. 1923년에 발표된 ‘수혈혈구의 운명’ 논문에는 예비실험을 거쳐 B형 환자에게 O형 혈액을 수혈한 후에 수 시간 후에 환자의 귓볼에서 채혈하여, 비응집반응을 보이는 혈구를 정밀 계산한 실험 내용이 기술되어 있었다. 조선총독부의원 외과의사 이병훈이 제13회 조선의학회 총회에서 수혈의 경험에 관한 강연을 한 기록이 1925년 조선의학회잡지에 나와 있었다. 강연 초록의 내용을 보면 ‘작년부터 수혈환자 27명에게 54회의 수혈을 행하여 그중 7명은 사망하였고, 그 원인은 모두 사망직전에 행하였기 때문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Fig. 3).
1920년대의 문헌은 일본어 또는 독일어로 기술되어 있었다. 일본에서는 1919년에 수혈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일본의 수혈 경험이 국내로 전파되어 1920년대 초기에 혈액형에 대한 연구와 수혈 시도가 백인제 교수에 의해 활발히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되었다. Fig. 1에서 논문의 공저자인 키리하라(桐原) 교수는 도쿄제국대학교에서 ‘인류혈액에 있어서 동종혈액반응에 대하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3]. 이 키리하라 교수의 영향으로 백인제 박사가 한국인 혈액형에 대한 연구를 실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백인제 교수의 제자인 조진석(조명준 제5대 대한수혈학회장의 부친)은 1940년에 일본 나고야의대에서 면역수혈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이 일은 당시 신문기사로도 보도되었다[4]. 백인제 교수의 수혈에 관한 업적은 1954년 국내 민간병원 최초의 혈액원 개설로 이어진다. Cho 등[5]은 백인제 교수에 의해 혈액형 논문이 발표된 1922년을 우리나라 수혈의학의 원년으로 보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2023년 현재는 국내에서 수혈의학이 시작된 지 100년의 시간이 지나고 있다. 결론적으로 1920년대 국내 문헌 조사상 국내 최초의 수혈 사례를 찾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1924년에 조선총독부의원에서 수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다. 이로써 1922년과 1924년 사이에 국내에서 첫 수혈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 문헌 조사를 통해 1920년대에 국내에서 ABO 혈액형에 대한 연구와 직접 수혈이 상당수 시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1920년대 혈액형 연구와 수혈 시도는, 이후 국내 혈액원 개설과 수혈의학 발전의 초석이 된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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